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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-라이베리아 관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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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[편집]
미국과 라이베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. 라이베리아는 19세기부터 미국 흑인들이 라이베리아 일대로 이주 및 정착하면서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. 그리고 양국은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.#
2. 역사적 관계[편집]
2.1. 19세기[편집]
19세기에 미국내의 흑인 노예들이 라이베리아 지역으로 이주했다. 1816년, 토마스 제퍼슨의 제안으로 뉴저지 출신의 장로교회 목사 로버트 핀리가 중심이 된 미국식민협회가 흑인 노예들을 라이베리아로 이주하는 것을 맡았다.#
라이베리아는 미국령 라이베리아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식민지였다가 1847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독립국이 됐다.# 라이베리아는 독립 직후, 미국 헌법을 본따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성조기를 본딴 새로운 국기를 만들었다.#
1862년, 미국은 라이베리아의 독립을 승인한다. 라이베리아는 독립 이후 친미정책을 실시했다. 하지만 라이베리아 지역에 새롭게 정착한 흑인 노예들과 토착민간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라이베리아는 토착민과 흑인 노예간의 내전이 발생됐다.[1]
라이베리아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은 미국의 문물을 전파하는 등 라이베리아는 미국과 협력이 활발했다.[2]
2.2. 20세기[편집]
20세기에 들어서면서 냉전당시에 라이베리아는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교류가 많았다. 미국도 라이베리아와 매우 가까웠고 라이베리아의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등 미국은 라이베리아를 지원했다.
1990년 3월 24일, 라이베리아의 님바 지역에서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교전이 일어나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사망하면서 미국 정부는 님바 지역에서 떠나는 것을 권고했다.#
2.3. 21세기[편집]
라이베리아내에는 19세기에 미국에서 이주한 흑인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, 미국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공통점이 존재한다. 라이베리아인들중 부유층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은 편이며 라이베리아내의 경제적 상황에 의해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도 많은 편이다. 라이베리아는 국민의 4분의 1이 미국 이민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.#
2.3.1. 2000년대[편집]
2003년 6월 14일, 미국 해병대가 라이베리아로 파견됐다.# 7월 7일, 미국 군사전문가단이 라이베리아를 방문했다.# 하지만 라이베리아군의 방해로 난민 캠프를 방문하지 못했다.# 7월 9일, 부시 대통령은 라이베리아로 군대 파병을 검토했다.# 7월 21일, 찰스 테일러 대통령은 미국과 직접대화를 요구했다.# 몬로비아에서 라이베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격전을 벌이면서 미국 대사관이 큰 피해를 입었다.# 8월 6일, 미국 정부는 라이베리아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다고 밝혔다.#
2006년 3월 21일,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라이베리아를 지원해 해외의 성공 스토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.#
2008년 12월 22일, 라이베리아의 불안정에 미국이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을 미국 하원의원이 밝혔다.#
2.3.2. 2010년대[편집]
2014년 8월 11일, 미국이 시험중인 에볼라 퇴치제 지맵(ZMapp)을 라이베리아에 제공했다.# 9월 2일,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현지 주민들을 치료중이던 미국인이 에볼라에 감염됐다.# 9월 17일,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인 의사가 완치된 뒤, 라이베리아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.# 10월 3일, 미국에서 라이베리아인이 에볼라 첫 확진 판정을 받자 기소 위기에 처했다.# 라이베리아 당국은 미국에서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은 라이베리아인이 입국시 처벌한다고 밝혔다.# 게다가 라이베리아에서 미국 NBC 기자가 에볼라에 감염됐다.# 10월 9일, 미국 당국은 미국으로 불법입국하려던 라이베리아인 여성을 추방했다고 밝혔다.# 미국 해병대가 라이베리아에 도착해 에볼라 퇴치 업무를 맡았다.# 10월 19일, 라이베리아의 앨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아들이 에볼라를 피해 미국에 있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어났다.# 미국에 거주하는 라이베리아 출신의 한 여성이 에볼라 낙인 반대 캠페인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.# 11월 12일, 미국 해군은 라이베리아에 파견중인 미군 규모를 4,000명에서 3,000명으로 줄인다고 밝혔다.#
2015년 1월 4일, 라이베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상원의원이 라이베리아내 에볼라 상황이 크게 완화됐다고 밝혔다.# 2월 27일, 미군은 몬로비아시에서 에볼라 퇴치 임무 종료식을 진행했다.# 3월 13일, 라이베리아를 방문했던 미국인이 온두라스에서 에볼라 의심 증세를 보이자 격리됐다.# 5월 1일, 미국 당국은 라이베리아의 에볼라 치료소를 폐쇄한다고 밝혔다.# 9월 20일, 미국 보건당국이 라이베리아를 에볼라 의무 검사국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.# 11월 12일, 오바마 대통령은 라이베리아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밝혔다.# 이에 대해 라이베리아 차기 대통령 후보인 베노니 우레이가 감사의 뜻을 밝혔다.#
2017년 8월 21일, 싱가포르 해상에서 미군의 이지스함이 라이베리아 상선과 충돌했다.#
2018년 2월 12일, 미국에서 식당주인을 행사하던 라이베리아 학살주범이 체포됐다.# 3월 27일, 트럼프 대통령은 라이베리아 이민자의 미국 합법적 거주 지위 종료를 시사했다.# 다만, 라이베리아에서 미국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올랐다.#
2.3.3. 2020년대[편집]
2021년 1월 20일,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온 라이베리아인들의 체류기간을 2022년 6월로 연장한다고 밝혔다.#
2022년 2월 14일, 라이베리아 정부는 라이베리아 건국 200주년 기념행사에 미국 흑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거주하는 라이베리아인들을 초대한다고 밝혔다.# 7월 8일, 라이베리아기국(LISCR)이 미국 해안경비대와 유럽연합으로부터 선박안전기국으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.#
3. 문화 교류[편집]
라이베리아는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공용어인데 라이베리아식 영어가 미국 영어를 바탕으로 생겨났다. 또한, 미국 문화는 라이베리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다. 특히 추수감사절은 라이베리아에서도 기념일로 지정돼 있다.# 미국과 마찬가지로 라이베리아는 미터법을 쓰지 않고 있다.#
4. 교통 교류[편집]
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하지 않는다. 그러다보니 대개 주변국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. 라이베리아인들은 미국으로 입국할 때 비자가 요구된다.
5. 대사관[편집]
몬로비아시에 주 라이베리아 미국 대사관이 존재한다.
2014년 8월 7일, 미국 국무부는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가 확산돼 대사관의 모든 직원들과 가족들을 철수시킨다고 밝혔다.#
6. 여담[편집]
주한 미국 대사 대리였던 크리스토퍼 델 코소가 한국외에도 브라질, 아프간, 라이베리아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.#
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었다.#
7. 관련 기사[편집]
8. 관련 문서[편집]
- 미국/외교 / 미국-아프리카 관계
- 라이베리아/외교
- 미국령 라이베리아
- 미국 영어 / 라이베리아 영어
- 대국관계일람/아메리카 국가/북아메리카 국가
- 대국관계일람/아프리카 국가/서아프리카 국가